생성형 AI로 만든 그림.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지난 47일간 윤석열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를 성채로 삼아 자신만의 성전(聖戰)을 시작했다. 이제 그 전쟁은 감방 안에서 계속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외롭고도 힘든 성전에 참전하는 아스팔트의 십자군들은 창대한 군사를 일으켰다”고 썼다.
그가 십자군을 비유해서 말하자, 거센 비난의 여론이 일었고 김재원 전 최고는 곧바로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다. 십자군 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뉴저널리스트는 이 전쟁을 종교가 정치와 결합하여 극단적인 폭력과 대립을 낳았던 역사적 사례로 본다. 그 유산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충돌과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9.11 테러는 십자군 전쟁의 연장선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김재원 전 최고의 말을 조금 수정하면 윤석열은 십자군 운동 시절의 교황이고 아스팔트에서 시위하는 자들은 십자군이고 서울서부지법 침입을 한 자들은 십자군 중에서도 돌격대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신학의 권위자인 후스토 곤잘레스는 십자군 운동의 결과에 대해 “기독교 신자들과 모슬렘들, 그리고 라틴 신자들과 비잔틴 신자들 사이의 증오와 적대심은 깊어가기만 했다”고 평가했다.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전쟁과 유혈극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상처로 남아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소위 "성전"도 미래에 역사적 상처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십자군 원정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종교회의에서 십자군 전쟁을 독려하며 “하나님의 뜻(Deus vult)”을 외쳤다. 그는 성지 이스라엘을 되찾는 것이 신앙의 승리이자 구원을 얻는 길이라고 선포하며 전쟁을 신의 명령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종교를 이용한 정치적 동원에 불과했다.
케네스 커티스, 스티븐 랭, 랜디 피터슨은 ‘교회사 100대 사건’에서 십자군 전쟁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십자군 전쟁은 많은 점에서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십자군의 잔인한 행각은 오히려 모슬렘을 광분시켰다.”
실제로 십자군 병사들은 찬송을 부르며 성전을 외쳤지만, 그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강간, 약탈이 자행되었다. 당시 십자군의 만행을 기록한 한 증인은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악한 짓도 하지 않았다. 모조리 창으로 찔러 죽였을 뿐이다”라고 자랑했다. 신의 뜻을 외치며 행해진 폭력이 오히려 신앙을 더럽히고,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적대감을 깊이 각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한민국 21세기판 십자군 전쟁도 목사 전광훈과 그 추종자들에 따르면 '신의 뜻'인데 그 결과는 사회 속에서 적대감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십자군 전통: 종교가 정치와 결합할 때 위험
십자군 운동의 정신은 미국에서도 펼쳐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對)테러전을 ‘십자군(The Crusade)’으로 명명하며 기독교적 정의의 전쟁으로 포장했다. 이에 대해 유럽 각국은 즉각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경고했다. 프랑스 외무장관 위베르 베드린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문명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 커다란 덫을 거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반응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적(neo-con) 기독교 세력은 여전히 이슬람을 ‘악’으로 규정하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윌리엄 보이킨 미 육군 중장은 “현재의 전쟁은 사탄에 대한 기독교 전쟁”이라며 십자군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갈등을 넘어, 종교적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이 유대인과 무슬림의 갈등을 심화시켰듯이, 현대의 ‘신(新) 십자군 전쟁’도 유대인-무슬림, 미국-이슬람 세계의 충돌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아민 말루프는 그의 저서 ‘아랍의 눈으로 본 십자군 운동’에서 “십자군 전쟁으로 모슬렘인들은 과민하고 방어적이고 매마르고 비관용적인 사람들이 됐으며, 이는 세계가 진화하고 있을 때 이들을 더욱 소외된 사람들로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21세기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조지 W. 부시는 대(對)테러 전쟁을 십자군 원정으로 묘사하며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이는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자신들의 성전을 정당화할 명분을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과 유대인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군 원정을 다시 시작했다며 이슬람권을 결집시키려 했다.
십자군 운동은 종교가 정치와 결합할 때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역사적 사례다. 신앙을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은 결과적으로 종교적 가치를 실추시키고, 공동체 간의 불신과 증오를 심화시켰다. 십자군 전쟁이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대 국제 정치와 종교 갈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풀러 신학대학원의 윤리학 교수 글렌 스태슨은 “기독교인은 자주 인권을 침해했고, 이 때문에 회개할 일이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는 본래 평화와 사랑을 가르치지만,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때는 오히려 폭력과 억압의 도구가 된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십자군 전쟁을 서구 문명의 도덕적·정치적 실패로 평가했다. 그는 십자군이 기독교 신앙을 내세운 군사적 원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서유럽의 야만성과 제국주의적 팽창의 일환이었다고 분석했다.
토인비는 십자군이 "기독교의 이름을 빌린 서유럽의 야만적인 폭력"이며, 성지 탈환이라는 명분 아래 약탈과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A Study of History, Vol. 4, 1939). 또한, 그는 십자군이 단순한 종교전쟁이 아니라 서구 봉건 영주들이 경제적·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벌인 군사적 식민주의(military colonialism)로 보았다(A Study of History, Vol. 5, 1946).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 악화도 주요한 부정적 결과로 평가됐다. 십자군은 원래 이슬람 세력에 맞서 기독교 세계를 방어하는 목적이었지만,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동서 기독교 간의 분열을 심화시켰다. 이에 대해 토인비는 "기독교 세계의 자기파괴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Civilization on Trial, 1948).
토인비는 십자군이 서구와 이슬람 간의 문명적 교류를 촉진한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서구의 편견과 적대감을 강화해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전조가 되었다고 보았다(A Study of History, Vol. 6, 1954).
토인비는 궁극적으로 십자군이 단기적으로는 일부 십자군 국가(예루살렘 왕국 등)를 세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철저히 격퇴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십자군은 도덕적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무의미한 모험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무의미하고, 무모한 모험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뼈아프다. 선교사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한국 교회가 십자군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시민 작가는 "김재원 전 최고가 아스팔트 위의 십자군이라고 말했는데, 십자군이라는 것이 조직 범죄라는 사실을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인정을 하고 사과까지 했다. 십자군 전쟁을 반인륜적인 조직 범죄로 그 주체들이 인정을 했던 거다. 비유를 해도 십자군한테 비유를 하나? 김재원 같은 사람은 그것이 범죄인 줄도 모른다. 십자군 전쟁은 종교와 세속 권력의 결합이 만들어낸 인류에 대한 범죄였고 인간성에 대한 범죄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900년 전 십자군 운동이 가져온 비극이,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서 재현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종교가 정치와 결합하면, 신앙의 이름 아래서 가장 잔혹한 전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