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섬유종’
김미례 작가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들었던 표현이다. 희소병을 앓고 있는데 긍정적으로 사는 작가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병인지 잘 몰랐던 필자지만, 희소병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희소병을 앓고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무게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기몸살만 나도 힘겨운데, 평생 고칠 수 없는 병을 안고 산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희소병을 앓고 있으면서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어떤 힘이 이 작가님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김미례 작가의 인터뷰가 몸이나 마음에 아픈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지 기대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독자분들께 소개 먼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1984년생, 김미례 작가라고 합니다.
문학소녀를 꿈꾸긴 했지만, 가정 형편상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나름대로 밝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지만, 웃음 뒤에 그늘진 모습이 많이 비쳤어요. ‘신경 섬유종’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살았기 때문인데요. 이런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고 많이 웃자며 노력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져 고달팠죠. 여기에 암까지 걸리게 되니, 일상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11년 전 언니를 암으로 보내고 또 5년 전엔 아빠까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저까지 암에 걸리다 보니, 안 좋은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저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막내 언니 덕분에, 제가 이렇게 다시 꿈을 찾게 되었어요. 막내 언니가 대전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제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제 소개를 하고 싶네요.
Q. 희귀난치성 질환뿐만 아니라, 암까지 걸리셨다고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대단하시네요. 신경 섬유종이라는 질환을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하게 어떤 건지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마귀예요.
사마귀가 한 톨 두 톨 나는 사람도 있지만, 엄청 많은 사람도 있거든요. 예전에 TV에서도 나왔었는데요. 저희 집안에서는, 엄마가 좀 심각하게 많이 지니고 계세요. 신경 섬유종은 제거해도 다시 자라나서, 의료진들도 답이 없다고 하세요. 재발 확률이 99% 정도 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좀 슬프긴 하죠. 계속 자라니까요. 이게 끝이 없대요. 한두 톨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도 안 된다고 해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두드러진다고 하더라고요. 인스턴트 음식도 자제해야 하고요. 그래야 나오던 자리에서 꿈틀거리는 게 좀 잦아든다고 해요. 저도 인스턴트를 엄청 많이 먹었거든요. 의료진들 말 듣고서는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저는, 엄마의 유전을 받았어도 많지는 않아요.
Q. 아. 그렇군요? 그럼, 계속 치료하면서 관리해야 하는 거네요?
저는 5~6살부터 턱 밑에 조그맣게 나기 시작했던 게, 조금 더 커졌어요.
30살 넘어가니까 턱 밑에 두 개가 너무 커졌는데요. 사람들이 저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는 있지만, 시선은 항상 턱밑으로 가는 거예요. 제가 느끼잖아요? 아닌 척하고 덤덤한 척하곤 했지만, 뒤에 가서 많이 울었죠. 우연한 기회에 혹을 제거했는데요. 제거해주신 성형외과 선생님이 더는 자라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요. 만져보면, 자라나는 섬유종과 자라나지 않는 섬유종이 있다고 해요. 완전히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90%는 티가 안 날 거라고 하세요. 제가 작년 9월에 했거든요. 작년에 암 수술하고 했으니까요.
Q. 네. 우여곡절이 있었네요. 조금 전에 우연히 제거했다고 하셨는데요. 그 계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암 수술했을 때였어요.
1기라서 다행히 항암을 하진 않았죠. 방사선 치료만 하면서 회사 복귀를 2주 정도 앞두고 있었는데요. 6개월 만에 회사 복귀를 하게 됐는데, 손목이 너무 아픈 거예요. 알고 보니,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거에요. 그 수술까지 하게 된 거죠. 너무 우울했어요. 회사를 다시 3개월 쉬어야 했으니까요. 복귀한 지 2주 만에 수술하고, 다시 회사를 쉬었어요. 쉬고 있는데, 언니가 “우리 막둥이 웃는 얼굴 언제 보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있으면 주름진다고요. 그러면서, “보톡스 맞으러 갈래?”라는 거에요. 손목 수술하고 요양을, 막내 언니네 집에서 하고 있었거든요. 언니가 보톡스 맞으면 주름도 펴지고 기분 좋아진다고 해서 따라갔어요.
보톡스를 놔주시다가, 제 턱을 이렇게 만지시는 거예요.
기분이 좀 그랬어요. “이거 섬유종 혹이에요.” 그랬죠. 선생님이, 왜 제거를 안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좀 놀라서 물었죠. “이게 제거가 돼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거 제거하고 싶어서 유명하다는 병원 다 찾아다녔거든요. 안 다녀본 곳이 없을 거예요. 다 같이 하는 말이, 신경 섬유종은 신경이랑 다 연결되어 있어서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고 했어요. 눈 시력도 잃을 수 있다고요. 선생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어요. 할 수 있다는 거죠. 섬유종 제거 수술을 많이 해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날짜 잡고 수술했어요. 설레면서 걱정도 됐어요. 수술하고 나서 혹시 시력이라도 잃으면 어쩌나 하고요. 수술하고, 2주 만에 실밥 풀러 갔어요. 아무 이상 없었고, 다시 나지도 않아요. 실밥 풀고 이 상태를 봤는데요. 없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막내 언니가 보톡스 맞으러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는 이 혹을 영영 제거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회사 사람들 근무하고 있는데 놀러 가서, 제거했다고 자랑했어요.
Q. 그랬을 것 같네요. 찾아다닌 병원에서 다 안 된다고 했으니까요. 그 말에 불가능하다 여기고, 생각을 접은 거잖아요? 병원에 우연히 간 것도 그런데요. 떡볶이집도 우연히 가셨다고요? 그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셨고요.
네. 이것도 우연이었죠. 언니네 반려견이 예방 접종이 있는 날이었는데요. 동물병원이 만년동(대전)이었던 거에요. 갔는데, 점심시간이 겹친 거예요. 배고프니까 밥 먼저 먹자고 했고, 온 김에 복권도 사갈까 하면서 복권방을 찾았어요. 복권방을 찾았는데, 그 옆에 떡볶이집이 있었고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우연이었어요. 보톡스 맞으러 간 가서 혹을 제거한 것도 그렇고, 도 작가님을 만난 것도 그렇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책을 쓰게 된 거예요.
Q. 그렇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우연이 만든 기적이랄까요? 떡볶이 집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하셨어요?
반려견 두 마리가 있으니까 사장님한테 먼저 양해를 구했어요.
흔쾌히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들어가서 떡볶이를 주문하고 계산한 다음, 복권방에 다녀왔어요. 돌아와서 자리 앉아서 둘러봤는데요. 책이 너무 많은 거예요. 책을 둘러보는데, 빨간 모자를 쓴 그림이 있는 책인 거예요. 떡볶이 사장님도 빨간 모자를 썼는데, 책에도 빨간 모자를 쓴 거죠. 사장님한테, 여기 진열된 책 판매하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사장님이, “네. 판매해요” 그러면서, “그거 제가 쓴 책이에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놀랐죠. 책 구매하면 사인도 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떡볶이가 나와서 언니하고 떡볶이를 먹는데, 사장님 그러니까, 작가님이 사인해 주시겠다고 이름 물어보셨어요. 작가님을 보면서, 저도 어릴 적에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말씀드렸어요. 제 말을 듣고 자리에 앉으셨어요. 작가님이 저와 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근데 왜 안 하냐고 물으셨어요.
집안 사정이랑 학창 시절 이야기를 했어요.
학창 시절, 공부는 좀 못했지만, 문학 이런 거로, 상도 좀 받았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도서위원장을 했는데요. 독서실 관리하는 거예요. 친구랑 같이했는데요. 점심시간에 할 일이 없으니까, 그냥 흘기듯이 시를 한 장을 썼어요. 그걸 도서 기록장에다 그냥 끼워놓고 수업에 들어간 거죠. 교감 선생님이 순회하시다가 그걸 보시고, 교무실 앞 게시판에 붙여놓은 거예요.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이런 얘기를 작가님한테 했어요. 얘기를 듣더니, 지금은 그 꿈을 버렸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동안의 제 이야기를 했어요. 섬유종이 있었고 암 수술하고 손목 수술도 했다고요. 이제 회사 복귀를 앞두고 있다고요. 지금부터라도 제가 제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다고 했어요.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신이 도와주겠다고 하시면서요. 제가 이 계기로, 책을 쓰게 됐어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 작가님 도움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2주일에 한 번씩 작가님을 만났던 것 같아요. 빠르면 일주일에 한 번, 늦으면 열흘 간격으로 작가님하고 만났어요. 작가님이 목록을 주시면 제가 글을 써서 작가님한테 파일 보내드렸어요. 줌으로 수정하면서 작업했는데요. 한 3개월 걸렸던 것 같아요.
Q. 그렇군요.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장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제가 쓰면서 많이 울었던 부분인데요.
하늘로 간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에 섬유종을 가지고 나왔어요. 저희 남매 중에 2명을 제외하고 4명이 섬유종 가지고 태어났어요. 저희가 6남매였거든요. 막내 언니는 제가 생각을 해도 좀 예쁜 사람이었어요. 하늘간 언니가 한번은 이런 거예요. “서연아 나는, 너로 한 번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몰랐던 언니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좀 짠했어요. 그 문장이 가장 와닿았어요. 엄마가 했던 말도 그래요.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엄마 때문에 이렇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요. 그래도 잘 키워줄 거라고 하세요.
Q. 정말 짠하네요. 말씀을 들어보면 가족간에 우애가 참 좋으신 거 같아요?
제가 언니 오빠들하고 나이 차이가 되게 많이 나요.
제 바로 위 오빠하고만 3살 차이가 나고요. 다른 언니 오빠들하고는, 거의 10살 차이가 나요. 막내 언니 빼고요. 제가 20살 됐을 때, 언니 오빠들이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외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명절 때나 엄마 아빠 생신 때 외에는 집에 오질 않았어요. 지금은 우애가 되게 좋은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었어요. 친구들이 언니 오빠가 많아서 좋겠다고 하면요. 제가 뭐가 좋냐고 반문했죠. 각자 자기 인생 살고 있는데 말이죠. 저희가 이렇게 돈독해지기 시작했던 거는요. 작은 언니가 2014년도에 하늘로 갔거든요. 그때부터 가족이 잘 모였어요. 대부분 다 이 지역에 살게 됐고요. 그 이후로 저희 우애가 좀 돈독해졌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그냥, 너 살아라 나 살게. 뭐 이런 식이었어요.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그게 더 강해졌어요. 가족끼리 모이고 밥 먹고 이러는 게 더 많아졌어요.
Q. 네. 책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삶을 사실 듯한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주신다면요?
제가 회사는 계속 다닐 것 같아요.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틈틈이 책을 쓰고 싶어요. 유명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아도, 그냥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많이 내고 싶어요. 일상을 시작으로 다양하게 쓰고 싶어요. 책을 쓰면서 제가 힐링을 좀 하고 싶어요. 책을 쓰면서 마음의 안정을 좀 찾고, 사람들과 대화도 더 많이 하면서 살고 싶어요.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은요.
저는 아직 부족하고 서툰 게 많아요. 제 글을 읽으면서, 엄마 생각과 가족 생각도 좀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 신경 섬유종 환자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와 같은 고민을 했다면, 늦지 않았으니 가까운 성형외과 가서 진료받고 제거하시면 좋겠다고요. 남들한테 곁눈질당하는 대상이 우리였다면, 그냥 당당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당당해지세요.
오빠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책에서 오빠 얘기를 많이 안 썼어요. 섬유종이 가장 심한 막내 오빠인데요. 그럼에도 오빠는 항상 밝아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제가 주눅 들긴 하지만, 오빠보고 많이 배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인터뷰어의 나가는 말'
책 이야기보다는 삶 이야기를 더 많이 한 인터뷰였다.
김미례 작가의 삶이 책이지 않을까 싶다. 신경 섬유종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암에 걸리고 손목터널증후군까지 겪어야 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모두 겪었다면 과연 온전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수 있을까? 대부분은 우울감에 빠져 밖으로 나오려 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김미례 작가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서 우연을 만났고 그 우연이 작가님의 삶을 변화시켰다. 김미례 작가도 말한다. 희망을 주고 싶다고. 희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면 작가처럼 나를 위한 우연을 만나게 될 거다. 그 우연이 삶을 바꿔줄 거다. 김미례 작가를 보면서 확신이 든다.